[창간특집] 수입차 100만대 시대-수리비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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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수입차 100만대 시대-수리비 그늘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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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수입차 시장, 역행하는 AS 인프라
▲ 사진은 본문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급성장하는 수입차 시장, 역행하는 AS 인프라

수리비는 ‘과다’ … 서비스센터 확충은 ‘찔끔’

“대체부품이 해결 대안” 주장에, 업계 “글쎄”

#1. 국산 스포츠다목적차량(SUV)을 모는 강모(30)씨는 지난해 실수로 벤츠와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차간 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앞에 있던 벤츠 뒤 범퍼를 부쉈다. 그 후 수리비가 얼마 나올지 몰라 몇 주를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강씨는 “도로 위 폭탄이라 불리는 수입차와 사고 나면 수 백 만원은 기본으로 깨진다는 소리를 들어 더욱 불안했다”며 “다행히 차주가 기본 수리비만 청구해 생각보단 큰 비용이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600만원 나왔다”고 말했다.

강씨가 지불한 비용에는 싱가포르에서 수입해 들어오는 부품 비용과 공임, 수리 기간 차량 렌트비가 포함됐다.

#2. BMW를 모는 김모(42)씨는 얼마 전 후진하다 도로 구조물과 부딪혀 리어램프에 금이 가는 사고를 냈다. 간단히 수리할 수 있겠다 생각했던 김씨는 견적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교체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적어도 3~4주나 필요했고, 비용도 생각보다 많았던 것. 결국 수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조그마한 램프 하나 수리하는데도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에 황당했다”며 “비싼 가격을 주고 차를 구매했는데 살 때만 왕 대접을 받았을 뿐, 이후 AS는 소비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무척 불쾌했다”고 말했다.

1987년 공식적으로 국내에 수입차가 들어오기 시작한 뒤 27년 만인 올해 수입차 등록대수가 100만대를 넘어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수입차는 모두 100만6328대다.

수입차 100만대 시대를 맞이했는데도 관련 인프라는 이런 양적 성장을 받쳐줄 만큼 갖춰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수리비 문제다.

수리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수입차 업체 모두 매번 “시정하겠다”고 말하지만, 돌아서선 “싫으면 말고” 식 배짱 장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소비자 시각이다.

수입차 구입을 생각해본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과도한 수리비를 고민해보게 된다. 인터넷 동호회 카페나 포털 게시판에서 “수입차 한번 수리하려면 수 백 만원 깨지는 것은 기본”이라거나 “수리기간 한 달은 기본, 서너 달은 옵션”이라는 조롱 섞인 의견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월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이 보험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입차 평균 수리비는 276만원으로 국산차보다 2.9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리비에 대한 소비자 불만도 높아졌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이후 지난 9월까지 수입차 관련 민원 접수건수가 3800건이 넘는다. 이전과 비교해 건수가 크게 늘었다. 아우디∙폭스바겐 모델 관련 민원이 1510건으로 가장 많았고, 메르세데스-벤츠가 683건으로 뒤를 이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다음에서 ‘수입차 수리비’를 입력하면 관련 글이 수 천 개가 나올 정도다. 문제는 수년 전 제기된 불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는데도 수입차 업체가 이를 제대로 시정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수입차 수리비가 과도하게 책정되는 가장 큰 이유는 턱없이 비싼 부품 가격 때문. 특히 고급 수입차 일수록 부품 자체가 비싸 수리비가 천문학적으로 뛰는 경우가 많다.

수입차 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차 중 많은 수가 풀 옵션 프리미엄급이라 자연히 처음 출고되는 부품가격도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품가격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실제보다 비싸게 부풀려진다는 의혹도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수입차 평균 수리비 중 부품 값이 국산차 대비 6.3배 비싸다는 보험개발원 자료 등이 판단 근거다.

적지 않은 업계 관계자와 자동차 전문가는 부품가격에 물류∙유통 비용이 과도하게 포함되고 있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수입차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사용하는 부품 거의 대부분이 본사를 통해 수입한 것들이다.

이 때문에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세와 운송비용 등이 가격에 반영된다. 생산 현지보다 2배 이상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게 당연한 구조다.

복잡한 유통 구조도 부품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통 유통구조가 원 제조 부품회사에서 수입차 한국법인을 거쳐 국내 딜러사와 서비스센터로 이어진다. 중간 유통 마진이 생겨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부품 팔아 여럿이 돈 번다”는 소비자 불만이 이 때문에 나오고 있다.

최근 수입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별 딜러가 차량 가격을 낮추자, 역으로 수리비가 높아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차 판매를 통해 이익을 남겨왔던 딜러들이 차를 싸게 파는 대신 부품 판매와 수리비를 높이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것.

수입차 업체 매출에서 신차 판매와 AS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8대 2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센터 부족도 문제라는 지적. 늘어나는 판매량에 맞춰 서비스센터를 확충해야 하는데, 업체 대부분이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는 48곳, 아우디 24곳, 폭스바겐 27곳, BMW 40곳, 렉서스 22곳을 갖추고 있다. 한 해 늘어나는 비중이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지난해 이후 수입차 시장 성장률은 평균 20%를 훌쩍 넘겼다.

그나마 있는 서비스센터도 서울이나 경기 등 큰 도시에 몰려있어 강원도나 경상도∙전라도 등지에서 차가 고장 나면 멀리 ‘원정’ 가야하는 상황이 잣다.

서비스센터가 부족하다보니 수리 받는데 필요한 대기시간도 길어진다. 이는 곧장 렌트비 등 부대비용을 늘리게 된다. 김희국 의원이 공개한 수입차 평균 수리비 가운데 차량 렌트비가 차지하는 금액은 130만원으로 국산차 3.3배에 이르렀다. 수입차 수리건수 가운데 수리비보다 렌트비가 더 많이 나온 경우도 2009년 대비 3.2배나 급증한 3만5000여건이나 됐다.

강원도에서 사업을 하는 아우디 차주 김모(44)씨는 “강원도에는 서비스센터가 원주에 하나밖에 없어 정말 불편하다”며 “차를 살 때는 모든 편의를 다 봐줄 것처럼 말하는데, 막상 구입하고 나면 ‘내 알바 아니다’ 식으로 대하는 모습에 기분 나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입차에 지급된 자동차 보험금은 총 1조673억원.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보험금은 지난 2009년(4774억원) 대비 2.2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부품 가격 문제는 대체부품 사용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보고 있다. 국내 중소 부품업체가 생산한 대체부품을 정부가 인증해 사용케 하면 당장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일반 정비업체에서도 수리가 가능해진다.

가격을 낮추고 수리에 들어가는 공정시간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입차 수리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으로 손꼽혀왔다.

실제로 내년부터 자동차 대체부품 사용이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내 중소 부품업체가 생산하고 이를 정부가 지정한 민간기관으로부터 인증 받으면 대체부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실상 죽어 있는 대체부품 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를 OEM부품만 통용되는 수입차 시장에 적용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KAPA)는 대체부품을 사용하면 부품 가격이 30~50% 싸지고, 공임 비용도 30% 저렴해지면서 전체 수리비가 최소 30% 이상 떨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수입차 업체는 “대체부품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회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수의 업체 관계자가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곳에서 대체부품을 사용하면 결함이 발생했을 때 책임소지를 분명히 가릴 수 없다”며 “OEM부품은 자동차 최적 성능과 안전을 보장하지만 대체부품은 인증을 통과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장려하기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들 업체들은 “현재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곳에서 수리를 했다가 하자가 생겨 재 수리를 받는 경우가 제법 많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품 관련 업계는 대체부품이 안전과 직결된 부품을 제외하고 범퍼커버∙펜더∙보닛 등 수리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80개 부품으로 한정돼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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