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수입차 100만대 시대-할부금융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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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수입차 100만대 시대-할부금융의 함정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4.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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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금융 제도에 대한 범정부∙사회적 고민 필요”
▲ 사진은 본문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할부 유예 조건에 솔깃해 덜컥 계약

유예기간 지난 후 목돈 마련에 혼쭐

지난 2007년 국내 시장에 들어온 수입차는 모두 7만3227대였다. 그러던 게 지난해 19만1066대(국내 업체 OEM 도입 및 상용차 포함)로 1.6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수입차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7%였던 게 12.1%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폭발적인 성장세는 수입차 업체가 앞 다퉈 할부금융 제도를 도입한 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수입차 업체 할부금융 제도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상품이 유예할부 제도. 차량 가격 일부를 선납하고 잔액을 2~3년간 매월 원금과 이자를 낸 후 남은 유예금액을 일시불로 내야 한다. 선납금은 10~40%까지며, 유예되는 차량 가격은 대개 40~50% 선이다.

이럴 경우 고가 수입차 구입에 들어가는 첫 비용이 훨씬 줄어든다. 당장 큰돈 없는 소비자 입장에서 군침 도는 유혹이다.

차 가격이 낮은 소형 수입차의 경우 선납금은 물론 월 납입금도 적다. 일부 차종은 월 10~20만원에 차를 탈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 등 목돈 마련이 쉽지 않은 젊은 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업체 간 경쟁이 심해져 월 납입금에 이자를 매기지 않는 무이자 할부 프로모션도 늘고 있다. 이밖에 유예 원금 없이 선납금과 할부금만 내는 방식도 있고, 이때도 이자를 물지 않는 경우까지 다양한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유예 원금을 재 금융 방식으로 다시 해결해주는 업체도 많다.

문제는 할부 이용 소비자 대부분이 목돈을 끌어오기 어려운 중산층 이하 서민이라는 점. 화려한 수입차를 값을 나눠 내면 얻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구입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할부 기간이 끝나고 남은 원금을 내야 하는 시점이 돌아와 목돈 부담에 시달리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권모(27․서울)씨는 대학생 시절 3000만원 대 소형 수입차를 구입했는데 할부 기간이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이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몇 차례 회사를 들어갔다 나왔다 했을 뿐 원하는 직장을 잡지 못한 상태라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하다.

권씨는 “대학 4학년 때는 곧 취직할 거란 생각에 큰 돈 들이지 않고 수입차를 사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며 “그간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과 틈틈이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처리했지만, 앞으로 남은 원금 등을 생각하면 매일 차를 쳐다보기가 두려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할부금융 제도를 이용해 수입차를 구입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합산된 자료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리스를 포함한 할부 방식 거래 비중은 지난해 보다 6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수입차 시장이 최소 3년 이상은 고공 성장을 할 것으로 보고, 이 기간 할부금융 제도 또한 동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주요 수입차 업체 모두 계열로 금융사를 두고 있다. 향후 늘어날 수요를 자체적으로 감당해 수입을 창출하겠다는 계산에서다. 이들 금융사 이자 금리는 외부 캐피탈과 같은 할부금융사 수준보다 훨씬 높다.

금융업계는 “상당수가 7~8% 선인 업계 이자 수준보다 높은 10~12%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입차 계열 금융사는 자사 차량을 구입할 때 금융상품을 이용하면 가격을 더 많이 할인해 주거나 각종 혜택을 준다. 일선 딜러 또한 실적과 연계돼 있어 소비자를 금융사로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비용 부담을 느끼는 많은 소비자가 몰린다.

독일계 수입차 업체 한 딜러는 “차는 다른 소비재와 달리 이것저것 고려한 후 매장을 찾기 때문에 일단 가격을 따지는 단계까지 오면 고객 대부분이 실제 차를 구입 한다”며 “다소 이자가 높더라도 당장 들어갈 돈에 대한 부담이 적어 할부 금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이때 딜러들도 인센티브가 달려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계열 금융사를 권유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낸 이자는 고스란히 수입차 계열 금융사 살을 찌웠다. 주요 4대 수입차 업체가 세운 ‘파이낸셜 서비스’ 업체 모두 최근 5년 간 자산규모가 2배 이상 급증했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같은 차종인데도 어떤 딜러를 만나느냐에 따라 구입 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각 업체가 내세우는 월별 프로모션에 따라 차종마다 할인 금액이 명시돼 있지만, 딜러 선에서 추가 할인해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신 딜러들은 차를 사러 온 소비자에게 자사 금융상품을 이용하라고 이끈다.

천차만별 가격 탓에 “제 값 다주고 차를 사는 사람만 바보”라는 비아냥거림이 시장에서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수입차 구입 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그에 비례해 도를 넘어선 소비 풍토를 양산한 문제에 대해 정부는 물론 수입차 업체와 소비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할부금융 제도로 인한 소비자 피해 등을 정부와 금융당국이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그에 못지않게 소비자 또한 내게 맞는 구입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려는 노력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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